중앙일보 사설입니다. 공감가는 사항이라 님들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얼마 전 일본 원전 폭발에 앞서 이뤄진 간 총리의 원전시찰이 도마 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간 총리는 "현장상황을 파악하겠다"며 돌연 원자력발전소 시찰에 나섰지만 산케이신문은 방사능 물질을 방출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던 현장 담당자들이 총리 일행을 맞이하느라 현장작업이 지체됐다고 합니다.

<중앙일보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짧지 않은 신문사 생활을 하면서 기자는 언제나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게 미디어의 역할이니 당연한 말이다. 요즘엔 그 ‘현장’의 외연(外延)이 무척 넓어진 걸 실감한다. 인터넷·모바일 세상도 이젠 어엿한 현장이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 사람의 글이 인터넷 여론을 움직이고 결국 오프라인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허다하다. 트위터로 대표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또 어떤가. 유명인사의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도 직접 들을 수 있고, 그 자체가 기사가 되기도 한다. 이런 세상에서 전통적·물리적 의미의 현장만을 고집하다 보면 진짜 의미 있는 현장을 놓칠 우려가 있다. 세상은 넓고 현장은 많다. 이런 때일수록 필요한 건 가야 할, 지켜볼 현장을 고르는 안목이다. 기자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할 수는(omnipresent)’ 없으니 말이다.

 경영자나 정책당국자도 현장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현장 경영’이니 ‘현장 행정’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나. 현장에서 해법을 찾고 현장의 가 려운 곳을 직접 긁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다만 요즘 기업의 ‘현장 경영’ 보도를 보면 현장이 최고경영자 개인의 화장(化粧) 수단으로 전락한 듯한 느낌이다. 홍보의 힘이 워낙 세진 탓이다.

 최근 장관들의 ‘현장 행정’도 부쩍 늘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영향을 미친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물가 문제를 강조하면서 “국무위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현장에 나가서 확인하는 행정을 더 적극적으로 해나가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 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서울의 한 주유소를 찾았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16일 부산대를 방문해 산학협력의 현장을 둘러봤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17일 강원도 탄광에 갔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오늘 서울 구로지역 중소기업을 방문할 예정이다. 취임 이후 물가 중시 행보를 보여온 김 위원장은 1월 경쟁당국 책임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전통시장을 방문해 현장물가를 챙기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재래시장이나 재해 현장 방문을 꺼렸다. 보여주기 위한 ‘쇼’라는 이유에서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대통령이나 장관의 현장 방문은 정책 메시지의 효과적인 전달 수단이기도 해서다. 윤 장관은 현장에서 “정유사들의 주유소 공급가격이 투명하지 않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현장 행정’은 탁상행정을 경계하자는 말이지 무조건 장관을 현장으로 내몰려는 취지는 아닐 것이다. 장관의 성패는 시간관리에 달려 있다고 한다. 똑똑한 사무관·과장이 현장과 함께 숨쉬는 좋은 보고서를 쓰도록 시스템적으로 독려하는 편이 더 낫다. 장관이 그런 보고서를 차분히 읽는 것도 ‘현장 행정’이라고 믿는다.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현장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도 명저 『국화와 칼』을 남겼다. 현장 챙기시느라 다들 너무 바쁘시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