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시월의 마지막 밤입니다. 정확히는 시월의 마지막 새벽이라고 해야 맞겠지요. 시월의 마지막 밤마다 무슨 기념일이라도 되는냥 꼭 챙겨서 술을 마시곤 했는데, 그것도 나이가 드니 별 의미 없이 흘러가네요.

시월의 마지막 밤에는 인생이 왠지 시(詩)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인생 자체가 시라는 것,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러다 떨어지는 낙엽마냥 그리움마저도 소진되어 가면, 우리 인생 또한 그렇게 사라져 가겠지요.

아직까지 누군가를 그리워 할 마음의 향수가 남아 있는 걸 보니, 이 놈 누보플레도 아직 인생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두서없는 그리움, 현존하지 않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겪다 보니 이성재님이 열연한 <나탈리>가 생각납니다.

개봉하자 마자 고고씽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애로 3D라는 타이틀을 단 영화치고는 너무 미적거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성애장면은 굉장히 환상적으로, 신인 여배우 박현진님의 음모노출은 놀라울 정도로 가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신인만이 할 수 있었던 헤어누드가 아니었던가 합니다.

<나탈리>에서 조각가 준혁(이성재 분)은 예술가적인 목마름으로 영원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고통의 나날을 보냅니다. 어느 날 영원한 아름다움을 재현할 모델로 미란(박현진 분)을 우연히 만나, 둘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며 마침내 조각상 '나탈리'를 완성합니다.


그러나 '나탈리'를 완성하고 난 후, 준혁은 미란과 헤어집니다. 준혁이 사랑한 것은 인간 미란이 아니라, 영원한 아름다움의 일시적인 현현으로서 '여자 미란'을 사랑했던 것이지요. 흔히 예술가들은 창작 후에 파괴를 일삼는 못된 습성이 있는데, 준혁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인간이 한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현존으로서의 인간보다, 인간 그 자체의 어떤 본질을 그리워하고 향유하고자하는 욕망의 발로는 아닐까요. 인간으로서는 닿을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 그 사무치는 그리움은 시월의 마지막 밤처럼 시적(詩的)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극중 준혁은 미란을 통하여 나탈리를 조각하지만, 영원한 아름다움을 조각상이라는 피조물로 형상화하는 순간, 그 피조물은 준혁의 마음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맙니다. 조각가 현준은 그 후로 십년 동안 어떤 작품도 창조할 수 없게 됩니다.

시적인 밤,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 인간은 무엇을 그리워하는 것일까요. 무엇에 목말라하는 것일까요. 그 의미를 헤아릴 길 없는 밤이지만, 누군가가 한정없이 그리워지는 밤입니다. 시월의 마지막 밤, 나탈리 그 여자가 생각납니다.

만약 <나탈리>를 보신다면, 지루함은 감수하셔야 합니다. 스토리는 신선하나, 소설적인 플롯 구성으로 영화적인 긴박감은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배우들의 노출 수위는 한국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쎈 편에 속합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