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민 전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정년 1년을 앞두고 안식년 휴가에 들어가면서 엊그제 28일 오후 MBC 보도국 게시판에 올린 '고별인사'가 우리 사회에 명징한 울림을 낳고 있습니다.

신경민 전 앵커는 전주시 출신(1953년 8월 19일생)으로 전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에 MBC의 방송 기자로 입사하여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정동영과는 동갑에다 동기로 전주고등학교를 같이 졸업(48회)하고 둘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MBC에 입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신경민은 1993년부터 1994년까지 MBC 뉴스데스크의 주말 진행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박혜진 아나운서와 함께 평일 진행하며 대담하고 직설적인 ‘클로징 멘트’로 시청자들에게 시원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신 전 앵커는 지난해 4월 MBC <뉴스데스크> 앵커를 하다 하차했고, 그 후 1년 반이라는 세월 동안 선임기자인 그에게 MBC는 라디오 뉴스 진행을 비롯해 어떤 코너, 어떤 역할도 맡기지 않았습니다.

이는 신경민 전 앵커가 정년을 1년 앞두고도 사실상의 고별사를 쓰고 안식년을 선택한 이유로 보입니다. 신 앵커의 하차는 당시 엄기영 사장이 최종 결정했지만 전영배 전 보도국장이 신 앵커의 하차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고, 기자들의 제작거부 사태로 임명 한 달여 만에 전국장은 자진 사퇴했어야 했습니다.

동료와 후배들에게 전하는 신경민의 ‘작별 인사’는 험난한 시대에 원칙을 지키면서 언론인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했던 기자의 치열했던 삶을 뒤돌아보게 만듭니다.

신 전 앵커가 마지막으로 보도본부 게시판에 올린 ‘작별인사’는 과거 그의 클로징 멘트만큼이나 간결하면서, 깊은 공명을 울리는 명문장입니다. 다음은 신경민 전 앵커가 28일 오후 MBC 보도국 게시판에 올린 ‘작별인사’의 전문입니다.

저는 10월부터 안식년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기자 30년을 마감합니다. 81년 초 입사 이후 정신없이 지내왔습니다. 9월 초부터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시작했고 고려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에 재입학해 당분간 선생과 학생 신분으로 지내게 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메인 앵커 발령과 387일 만의 교체로 명예와 명성을 얻었지만 제 활동과 관심은 취재와 편집, 방송 체제와 한국 사회의 자유와 민주에 집중했습니다. 원칙을 지녀가기 험난한 시대에 공적, 사적 고초를 겪으면서 인간과 방송 기자로서의 자존심과 작은 원칙 몇 가지에 지탱했습니다. 이런 원칙을 지녀가면서 대과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던 점은 행운이었고 운명의 나침반과 함께 회사와 선후배들의 도움에 의지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항상 그러했듯이 한국 사회, 언론, 방송, MBC의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언론의 미래는 ‘content와 contact’의 성패에 달려있다는 분석에 공감합니다. 또 올바름이 항상 세속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현실적 진실’은 분명합니다. 70, 80년대를 몸으로 겪어온 세대로서 말하자면, 숨 쉬는 현실이 매우 불확실할 때에는 원칙을 지키면서 언론인의 기본 자질을 키워나가는 방법 이외에 뾰쪽한 묘수가 없지요. 이 점이 잊지 말아야 할 현실적 진실의 다른 면이고 최소한 생존할 수 있는 기초이며 언젠가 필요하게 될 언론과 언론인의 자질입니다.

능력 있고 엄청나게 좋은 “captain, oh my captain”은 아니더라도 그저 그렇고 그랬던 선배가 아니었기를 빌면서 저 역시 불확실한 미래로 들어갑니다. 다만 언론과 방송,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관심을 끄지는 못하겠지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개인적 작별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볼 테니 부디 함께 하도록 합시다. MBC와 법적 의무, 책임의 끈은 1년 남았지만 사실상 이것으로 ‘나의 MBC’를 클로징합니다. 모두에게 행운을 빕니다.

* 벌써 구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가을은 더욱 깊어 갑니다. 어느 가을 밤, 바람 소리가 쓸쓸하게 낙엽진 어둠을 쓸어갈 때 문득 그의 클로징 멘트가 그리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경민 MBC 논설위원이 지난해 뉴스데스크 앵커로 마지막 뉴스진행을 마치고 내려오고 있다(사진 : 미디어오늘)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